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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간의 후쿠오카 재즈바 여행기

들어가기 전에, 간단한 재즈 용어 설명.
헤드: Head, 메인 멜로디. 연주의 처음과 마지막에 헤드를 연주한다.
솔로: Solo, 즉흥 연주. 헤드가 끝나면 각 악기별로 솔로를 연주한다.
퇴사 후 2주의 여유 시간이 생겼다. 5박 6일 일정으로 후쿠오카 여행을 계획하고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꼼꼼하게 계획을 짜는 성격은 아니라서, 날마다 재즈바에 가자는 정도의 목표만 세웠다. 구글 맵을 이용해서 어떤 재즈바에 가볼지 적당히 후보를 추린 후, 여행을 시작했다.
1일차, Five pennies - 구글 맵을 따라 조용한 골목길로 들어가니, 오래된 빌딩이 하나 보인다. 조그마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작은 문을 열고 재즈바에 들어서니, 연주자들이 가벼운 리허설을 진행하고 계셨다. 기타를 연주하던 할아버지가 나를 보시더니 일본어로 무언가를 말씀하신다. 내가 일본어를 모른다는 걸 알아채셨는지, “Do you play instrument?”라고 영어로 물어보신다. 재즈 피아노를 연주한다고 말씀드리니, 공연 이후 잼 세션이 있으니 같이 연주하자고 말씀하신다.
five pennies 재즈바에서 사이토(기타) 씨, 미노타(베이스) 씨 와 함께 연주했다.
한 시간 정도 호스트 밴드 공연을 감상한 후, 세 곡 정도를 잼 세션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 다들 음악에 몰입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일본에는 나처럼 본업을 따로 두고 꾸준히 재즈를 배우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사이토 씨는 파나소닉에서 엔지니어로, 미노타 씨는 맥심에서 근무했다고 한다. 두 분 다 꾸준히 재즈를 배우다가 은퇴 이후 본격적으로 재즈 연주자로 활동하시기 시작했다. 미노타 씨에게 언제부터 베이스를 배우셨는지 물어보니, 28살에 배우기 시작해서 40년째 연주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2일차, Jazz inn new combo - 문을 열고 들어서니 수많은 포스터와 빼곡하게 쌓인 음반이 보인다. Jazz inn new combo는 후쿠오카에서 1,2위를 다투는 재즈바라고 들었다. 입구에 들어가자마자 벽을 뒤덮은 재즈 공연 포스터가 보인다. 아직 손님이 아무도 없어서 편하게 내부를 둘러본다. 수많은 LP와 포스터를 감상하고 있으니, 연주자들이 한 명씩 도착한다. 점원에게 “잼 세션이 있나요?”라고 물어보니, 오늘은 잼 세션이 없는 날이라고 대답하신다. 살짝 아쉬워하며 앉아 있는데, 점원이 다시 오셔서 “연주자들에게 물어봤는데, 한 곡 정도 연주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셨다.
호스트 밴드는 호레이스 실버 곡을 주로 연주했다. ‘summer in central park’가 특히 좋았다. 공연을 잘 즐기고, Blue bossa를 함께 연주했다. 다들 너무 실력이 좋으셔서 함께 연주하는 게 즐거웠다. 나중에 베이스를 연주하시는 하지메 씨가 한국에서도 몇 번이나 연주했다면서 클럽 에반스, 원스 인 어 블루문을 가봤냐고 물어보신다. 일본어도 잘 모르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짠하게 여겼는지, 다른 테이블의 일본 분께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챙겨주셨다. 감사하게도 잼 세션이 있는 재즈바를 알려주셔서,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이분들이 알려주신 재즈바에 갔다.
3일차 space terra - space terra는 매주 목요일마다 잼 세션이 있는 곳이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나처럼 잼 세션에 참여하러 온 사람이 한 명씩 도착한다. 트럼펫을 들고 온 할아버지도 계시고, 기타를 가져오신 분들도 보인다. 서로 인사하는 걸 보니, 잼 세션에 주기적으로 참여하시는 것 같다. 호스트 밴드의 연주가 시작한다. 베이스를 연주하시는 분(오노 씨)이 유쾌한 목소리로 곡을 소개하고 소소한 이야기도 한다. 연주 도중에 한 번씩 오노 씨의 감탄사가 들린다. 솔로 연주자가 좋은 연주를 할 때 나름의 리액션을 해주시는 것이다.
내가 ‘There will never be another you’를 연주하겠다고 말씀드리니, 테이블에 앉아 계시던 기타리스트가 자신도 참여하겠다며 나오신다. 오노씨가 물어보신다. “템포?”. 적당한 박자로 말씀드린다. “one two three four..”. 피아노인 내가 인트로를 맡아서 마지막 8마디를 연주한다. 8마디가 끝나고, 베이스, 드럼, 기타가 함께 들어오며 헤드가 시작된다. 헤드가 끝나면 돌아가면서 솔로를 연주할 차례다. 누가 먼저 솔로를 할 것인지 정하기 위해 기타를 연주하시는 분과 짧게 눈짓으로 소통한다. 한 명씩 솔로를 돌아가면서 하고 나면 다시 헤드를 마지막으로 연주하고 곡을 마무리한다. 내 연주에도 오노 씨가 감탄사로 리액션을 해주셨다. 세 번이나 들었다. 뿌듯했다.
4일차, Dal segno - Dal Segno는 좀 멀리 있는 곳이라 지하철을 타고 갔다. 좁은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서 가게 문을 여니 넓은 내부와 그랜드피아노가 보인다. 수요일 재즈바에서 만났던 쇼코 씨가 오늘은 여기서 연주하신다. 위스키를 마시며 호스트 밴드의 연주를 즐겼다. 호스트 밴드의 연주가 끝나고 잼 세션이 시작된다. 며칠 동안 돌아다니다 보니 느낀 것인데, 재즈바에 계신 분들이 “일본어도 잘 모르면서 재즈바 투어를 다니는 한국 청년”에게 꽤 호의를 베풀어 주시는 듯 했다. 덕분에 잼 세션에 5곡 정도 연주할 수 있었다. ‘Someday prince will com’, ‘Beautiful love’ 등을 연주했다.
Live Cafe Dal Seino에서. 드럼을 연주하시는 분은 사장님이다. 은퇴 후 라이브 카페를 차리셨다고 한다.
공연이 끝나고 테이블에서 쉬고 있으니 차분한 인상의 사장님이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 주셨다. 사장님은 세일즈맨으로 일하시다가 은퇴하시고 이 카페를 차렸다고 한다. 주변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11시다. 쇼코 씨가 숙소에 어떻게 가냐고 물으시더니, 차로 태워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쇼코 씨의 남편인 하지메 씨가 차를 가지고 오셨다는 것이다. 쇼코 씨와 내려가니 하지메 씨가 보인다. 오늘은 따로 연주가 없어서 낚시를 하면서 쉬셨다고 한다. 얼마나 잡았냐고 물어보니, 한 마리도 못 잡았다며 웃으셨다.
토요일, Live Bar Michael - 매일 재즈바에 갔더니, 마지막 날은 그냥 좀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커피를 마시니 에너지가 생긴다. 귀찮음을 극복하고 숙소 밖으로 나간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첫째 날 봤던 미노타 씨가 보인다. “미노타 씨 오늘 여기서 공연하세요?”라고 반갑게 물으니. 미노타 씨도 웃으며 반겨주신다. 미노타 씨가 연주하시는 모습이 너무 좋았던지라 더 반가웠다. 미노타 씨는 콘트라베이스에 몸을 살짝 기댄 채 좌우로 몸을 기울이시는데, 연주에 몰입하신 모습 같아 보기 좋았다. 호스트 밴드는 다양한 곡을 연주했는데, 평소에 재즈바에서 듣지 못했던 Jordu, you and night and the music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어느새 호스트 밴드의 공연이 끝나고 잼 세션 시간이다. 손님으로 오신 분 중에 베이스를 연주하시는 분이 계셔서 함께 몇 곡을 함께 연주했다. 처음 연주해 보는 곡도 있었다. 해드와 솔로는 적당히 했는데, 베이스 솔로에서 박자를 잘못 세서 이상한 코드를 연주했다. 연주가 끝나고 죄송하다고 하니 괜찮다며 웃으신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더 열심히 연습하겠다고 다짐했다.
잼 세션은 재즈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다. 쉽게 말하면 모르는 연주자들과 사전 연습 없이 즉흥으로 합주하는 것이다. 전 세계 어느 곳에 가든지, 잼 세션을 하는 재즈바가 있다면 비교적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말이 통하지 않더라도, 같이 연주하고 나면 어색함이 사라지고 유대감 같은 어떤 감정이 그 자리를 채운다. 재즈가 가져다주는 아름다운 순간이 아닐까. 혹시 취미를 고민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재즈 연주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