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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간의 훈련소 회고

23년 12월 28일부터 24년 1월 18일까지, 3주동안 논산 육군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왔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흐릿해지기 전에 정리해보려고 한다.

0. 훈련소에서의 일상

기억에 의존한 거라 정확한 시간은 아닐 수 있다.
6:00 ~ 7:20 훈련병들을 깨우는 방송이 나온다. 방송이 나오면 20분 안에 침구류를 정리하고 군복을 입고 군화를 신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약 100-200명 정도 되는 훈련병들이 모두 모여 애국가와 군가를 부른 후 체조를 하고 1.5km 정도 달리기를 했다.
7:20 ~ 12:00 아침을 먹고 복귀한다. 숙소로 돌아오면 훈련을 받기 위한 준비를 해야한다. 총기를 챙기거나, 군장을 싸는 등 몇 가지 준비를 한 뒤 나갔다. 그리고 오전 훈련이 시작된다
12:00 ~ 20:30 오전 훈련이 끝나면 점심을 먹는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오후 훈련을 한다. 오후 훈련이 끝나면 저녁을 먹는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추가 교육을 받고 생활관 청소를 했다.
21:30 ~ 22:00 저녁 점호를 한다. 저녁 점호때는 건강 상태를 점검하고 복무 신조를 함께 외치고 생활관 청소 상태를 점검한다.
22:00 ~ 6:00 저녁 점호가 끝나고 10시가 되면 잠을 자면 된다. 잠을 자다가 한번씩 불침번을 서야 하는데,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복도에 1시간 서있다가 다음 사람을 깨우고 다시 자면 된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다시 아침 점호를 시작하고 위의 과정을 반복한다.
몇 가지 힘들었던 점은 아래와 갔다.
1.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난 후, 밖에 나가서 체조와 조깅을 한다. 거의 매일 영하권 추위와 함께 했다.
2.
사회에서 내가 좋아했던 일(ex: 독서, 커피 내리기, 음악 듣기, 피아노 치기, 게임하기 등)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다행히 커피 내리는 도구를 가져가서 커피는 20번 정도 내려마신 것 같다.
3.
함께 하는 사람들과 잘 맞든 안 맞든 하루종일 함께 있어야 한다.

1. 함께 한 사람들

내가 있던 분대는 총 16명으로 구성된 분대였다. 평균 나이가 30살로, 94년생 분들이 가장 많았다. 박사 과정에 있는 분들이 절반 정도 된 것 같고, 의사로 계시는 분들이 3명, 나처럼 직장인이 3명이었다. 한예종에 다니는 발레 무용수와 축구 선수가 계셨고, 이 분들은 사회에서 만나기 힘든 분들이라 조금 신기했다. 발레를 전공하신 분은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해서 예술특례요원으로 오셨다고 했다.

2. 대화 주제

대학원생으로 계시는 분들은 대학원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부조리를 공유하며 ‘우리 교수님이 가장 쓰레기다.’, ‘아니다, 우리 교수님이 가장 쓰레기다.’ 같은 느낌의 불행 경진대회를 열었다. 어떤 교수님께서 본인의 연구 인생을 주제로 특강을 진행하는데 그 PPT와 대본 준비를 대학원생에게 맡겼다는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소소한 연구비 횡령이나 인력 착취는 꽤나 보편적이었다.
의사 선생님들은 모여서 의학 용어가 난무하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A 증상이 있을 경우 B라는 질병이 있을 수 있고 C를 처방하거나 D를 해야 한다.’ 같은 지식들을 공유하곤 했다. 전문적인 의학 용어의 비중이 높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별로 없었다. 응급실에서 발생한 일을 한번씩 들려주시기도 했다. 마약에 취한 환자가 정신을 잃은 채 응급실로 실려왔는데 근육이 모두 이완되서인지 누운 채로 대변을 거하게 봤고, 그걸 직접 받으셔야 했다는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가래떡처럼 나왔다는 표현을 하셔서 기억이 남는다.
그 외에도 창업을 한 사람이 두명 있었다. 각각 5년차, 7년차셨는데 행군을 하거나 이동을 할 때 한번씩 옆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다. 한 분은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서 미국에서부터 창업을 하셨던 분인데, 중국 공장에서 파업이 발생해서 그 공장으로 직접 날아가서 먹고 자면서 역경과 고난을 극복했던 썰이 인상적이었다.
나머지 한 분은 의사셨는데, 정말 시간을 아껴서 열심히 사시는 분 같았다. 과고에서 1등을 하고 서울대학교에선 3개의 전공을 한꺼번에 따고(생명, 경영, 경제), 의대 편입을 하여 의대를 졸업한 후 카이스트에서 석사를 따고 의사 생활과 창업을 병행하시는 분이었다.

3. 읽은 책

여유 시간이 생기면 보통 아래 활동을 할 수 있다:
1.
TV 보기
2.
수다 떨기
3.
책 읽기
4.
자기
나는 원래 TV를 보지 않고 수다 떠는 것도 엄청 선호하진 않아서 보통 책을 읽다가 졸리면 잤다. 다른 분들과 책을 교환하거나 공용 도서를 빌려 읽은 덕분에 꽤 많은 책을 읽었다. 읽은 책 목록과 간단한 평을 남긴다.
1.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 편하게 읽히는 책이었다. 적당한 힐링물
2.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무라세다케시 ★★ 편하게 읽히는 책이었다. 적당한 힐링물
3.
눈에 갇힌 외딴 산장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 편하게 읽히는 책이었다. 적당한 추리물
4.
노화의 종말, 데이비드 싱클레어 ★★★ 저자가 노화와 유전 분야 세계 최고 권위자라고 한다. 마지막에는 본인이 매일마다 하고 있는 습관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노화의 메커니즘과 그 과정에 관여하는 여러 요소들을 알게 되었다.
5.
본성과 양육, 매트 리들리 ★★★★ 붉은 여왕으로 유명한 매트 리들리의 책. 몇 번 읽어봐야지 했던 책인데 드디어 읽게 되었다. 저자가 굉장히 똑똑하고 위트있어서 책이 다루는 지식 수준에 비해 꽤 재미있게 읽힌다. 몇 가지 재미있는 포인트가 있었는데, 공감 능력을 발휘할 때, 일반인들은 감정/공감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되지만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환자는 추론/문제해결 등을 담당하는 뇌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나잖아..?
6.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 시간이란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 상대성 이론과 시공간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 느낌이다.
7.
엔드 오브 타임, 브라이언 그린 ★★★ 우주론, 양자역학을 포함해 우리 주변의 과학 이론을 잘 설명해준다. 적당히 재미있게 읽었다.
8.
삼체 1권, 류츠신 ★★★★★ 가장 재미있었던 책. 다른 분들도 읽어보시기를 추천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읽었던 SF 책 중 가장 재미있고 가장 몰입한 책이었다. 빨리 2,3권을 읽고 싶다.
9.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 표현이 아름다운 일본 문학. 다만 이런 류의 문학은 나와 잘 안 맞는 느낌이다.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10.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수아즈 사강 ★★ 사랑을 다룬 프랑스 문학. 인물들의 내면을 묘사하는 부분들을 특히 재미있게 읽었다.
11.
은수저, 나카 칸스케, 평가 보류 일본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는 책 같은데, 뭐하는 책인지 모르겠어서 1/10도 못읽고 하차해버렸다. 정말 여유롭다면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4. 마무리

훈련소 안에 있을 때는 시간이 너무 느리게 간다고 느껴졌는데, 막상 나오니 생각보다 3주가 빨리 갔다. 사회인으로 온갖 자유를 누리면서 살다가 자유를 박탈당한 채 3주를 지내다 오니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 온 분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1년 9개월을..